시, 글 222

친구처럼 / 문정희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누가 몰랐으랴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끼리도 끝까지 함께 갈 순 없다는 것을 진실로 슬픈 것은 그게 아니었지 언젠가 이 손이 낙엽이 되고 산이 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언젠가가 너무 빨리 온다는 사실이지 미처 숨돌릴 틈도 없이 온몸으로 사랑할 겨를도 없이 어느 하루 잠시 잊었던 친구처럼 홀연 다가와 투욱 어깨를 친다는 사실이지

시, 글 2022.02.03

여기에 우리 머물며 / 이기철

풀꽃만큼 제 하루를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얼만큼 그리움에 목말랐으면 한 번 부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필까 한 송이 꽃이 피어 들판의 주인이 될까 어디에 닿아도 푸른 물이 드는 나무의 생애처럼 아무리 쌓아 올려도 무겁지 않은 불덩이인 사랑 안보이는 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안들리는 곳에서도 새가 운다고 아직 노래가 되지 않은 마음들이 살을 깁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보석이 된 상처들은 근심의 거미줄을 깔고 앉아 노래한다 왜 흐르느냐고 물으면 강물은 대답하지 않고 산은 침묵의 흰 새를 들쪽으로 날려 보낸다 어떤 노여움도 어떤 아픔도 마침내 생의 향기가 되는 근심과 고통 사이 여기에 우리 머물며...

시, 글 2022.02.02

2월의 시 / 함영숙

겨울 껍질 벗기는 숨소리 봄 잉태 위해 2월은 몸사래 떨며 사르륵 사르륵 허물 벗는다. 자지러진 고통의 늪에서 완전한 날 , 다 이겨내지 못하고 삼일 낮밤을 포기한 2월 봄 문틈으로 머리 디밀치고 꿈틀 꼼지락 거리며 빙하의 얼음 녹이는 달 노랑과 녹색의 옷 생명에게 입히려 아픔의 고통, 달 안에 숨기고 황홀한 환희의 춤 몰래 추며 자기 꼬리의 날 삼일이나 우주에 던져 버리고 2월은 봄 사랑 낳으려 몸사래 떤다 겨울의 끝자락이 아쉽고 초봄을 잠시 맛배기로 계절은 여름으로 곧장 달려갈게 뻔한데 그래서 아직은 겨울잠에서 서성이고 싶은데 2월의 짧다란 날짜가 미워집니다 내 삶 언저리 돌아보면 짧아서 2월이 좋았던 기억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은 달 현실의 삶속에는 빠른 시간들이 미워서 짧은 2월을 반기지 않..

시, 글 2022.01.31

인연 / 서민주

문득 생각이 나기도 하고 어쩔 때는 궁금하기도 하여 그 사람 근황이 알고 싶어서 혼자서 흥얼거리기도 한다 만나야 될 사람은 돌고 돌아서 만나게 되는 게 인연이라 한다 새로운 인연을 얻는다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운 일이겠지만 삶의 활력을 주는 일이기도 하겠다 나이가 더해질수록 인연이란 함부로 맺는 게 아니라면서 문을 아예 닫아 버리기도 한다 이제는 어찌하리야 새로운 인연을 받아 줄 수 있는 마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영원한 평온 자리를 찾고 싶다

시, 글 2022.01.24

겨울 이야기 / 이도연

창밖은 넓고 겨울 이야기는 소담소담 쌓여 세상은 고요와 적막에 놓이며 수런거리는 숲의 대화는 나비의 날개짓으로 밤 사이 날아 오른다 세상은 온통 순백의 태고를 입고 시원의 세상은 맑고 정갈하며 신들의 제단 앞에 순결함으로 엄숙하고 들판에는 은백색 겨울 꽃이 걸려 있다 꿈결 같은 그리움은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의 완강한 어깨에서 느껴지는 안쓰러움으로 한 쌍의 겨울새는 설원에 아득한 발자국을 남기다 그 해 겨울에는 따스한 겨울 풍경이 흰 눈처럼 쌓여 부풀어 갔고 차가운 이성에 목마른 사랑도 솜사탕처럼 포근하게 겨울 숲이 보이는 창가에 내려 앉았다

시, 글 2022.01.18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인생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는 사람 없고 인생이 무엇인가 정말로 알고 인생을 사는 사람 없다 어쩌면 인생은 무정의 용어 같은 것 무작정 살아보아야 하는 것 옛날 사람들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도 오래 그래야 할 것 사람들 인생이 고달프다 지쳤다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가끔은 화가 나서 내다 버리고 싶다고까지 불평을 한다 그렇지만 말이다 비록 그러한 인생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조금쯤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인생은 고행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다 여기서 '고행' 이란 말 '여행' 이란 말로 한번 바꾸어보자 인생은 여행이다! 인생은 얼마나 가슴 벅찬 하루하루일 것이며 아기자기 즐겁고 아름다운 발길일 거냐 너도 부디 나와 함께 힘들고 지치고 고달픈 날들 여행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구나 지구..

시, 글 2022.01.14

행복한 결핍 / 홍수희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하나 내게 있으니 떄로는 가슴 아린 그리움이 따습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주고 싶은 마음 다 못 주었으니 아직도 내게는 촛불 켜는 밤들이 남아 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올해도 꽃을 피우지 못한 난초가 곁에 있으니 기다릴 줄 아는 겸손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내 안에 찾지 못한 길이 있으니 인생은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기 때문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 내 안에 무엇이 또 자라난다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시, 글 2022.01.13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울라 그 불 다 사그러 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 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벽의 어린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

시, 글 2022.01.10

이별 앞에 서면 생각나는 사람 / 안국훈

미칠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어느 순간 무엇 하나 어쩌지 못할 날 오고 가깝던 친구와 전화 한 통 없이 갑자기 멀어질 날 오는 게 인생이다 한때 죽도록 미워하던 사람도 정작 다시 만나면 반가운 날 오지만 그저 그렇게 봄날은 가고 여름이 돌아오듯 변한 사람 탓하지 말고 떠난 사람 붙잡지 마라 흙탕물 속에서도 우아한 연꽃 피어나고 비바람 부는 언덕에서 억새 자라듯 떠날 사람은 언제 어디서라도 떠나겠지만 남을 사람은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아도 남는다 태어나 삼천번 넘어지고야 겨우 걷는 법 배우나니 별 것도 아닌 일에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일찍 죽음을 알게 되거나 늦게 사랑을 깨우치더라도 설령 이별 없는 만남은 없나니 이별에 연연하지 말일이다

시, 글 202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