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 박후식
빈 뜰을 사색하는 나무 위에 나의 등불 위에 어둠을 쪼으며 눈이 내린다 겨울 가지에 아득히 불을 밝히는 밤의 눈발 그 눈발에 섞이어 나의 등불은 밤을 떠난다 무수한 밤의 낙서들이 나의 편린들이 불 꺼진 뜨락에 울고 있다 밤 새운 밤의 눈들이 가슴 찍힌 내 아낙들이 까만 선창에 끌려와 있다 뱃전에 부딫는 파란 물빛과 달빛에 빛나는 바다 먼 비둘기의 발목 그 슬픈 항로를 나는 끝내 버리지 못한다 하현 새벽달이 바다의 옆구리에 떨어진다 머리 빗은 아낙들은 타버린 수평 끝에 울고 있다 밤은 나의 갱도에서 수심 깊은 항해를 계속하고 아, 어디선가 얼음 깨는 소리 갱을 깨는 소리 꽃들은 소리하고 있다 눈이 내린다 빈 뜰을 사색하는 나무 위에 나의 등불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