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216

스치는 모든 것이 다 바람이려니 / 인애란

스치는 모든 것이 다 바람이려니 / 인애란  바람으로 와서 바람으로 흩어질 인생살이다. 커다란 고통도, 뼈아픈 후회도, 짓누르는 절망도 모든 것이 결국은 바람처럼 스치는 것.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돌아갈 우리다 대단한 사랑도, 근사한 추억도 , 아무리 극진한 사연도 모든 것이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도는 것,  그러한데 굳이 무얼 아파하며 번민하겠는가 ? 굳이 무얼 집착하며 놓지 못하겠는가? 조금만 생각의 깊이를 더해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보다 그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서로 빼앗고 싸우며 미워하기보다 용서하고 돌보며 사랑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한 줌 흙에서 와서 흙으로 묻힐 몸이다. 아름다운 쾌락도, 화려한 젋음도, 넘치는 부귀영화도 모..

시, 글 2024.10.13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 김재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 김재진 갑자기 모든 것 낯설어질 때 느닷없이 눈썹에 눈물 하나 매달릴 때 올 사람 없어도 문 밖에 나가 막차의 기적소리 들으며 심란해질 때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나서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걸어가도 젖지 않는 만월같이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벗어나라. 벗어난다는 건  조그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것 남겨진 흔적 또한 상처가 되지 않는 것 예리한 추억이 흉기 같은 시간 속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들 가슴에 베어올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스쳐가는 만월같이 모든 것 내려 놓고 길 떠나라.

시, 글 2024.10.08

세월이 가는 소리 / 오광수

세월이 가는 소리 / 오광수 싱싱한 고래 한 마리 같던 청춘이 잠시였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서른 지나  마흔 쉰 살까지 가는 여정이 무척 길 줄 알았지만 그저 찰나일 뿐이라는 게 살아본 사람들의 얘기다. 정말 쉰 살이 되면  아무 것도 잡을 것 없어 생이 가벼워질까... 쉰 살이 넘은 어느 작가가 그랬다. 마치 기차 레일이 덜컹거리고 흘러가듯이 세월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요즘 문득 깨어난 새벽,  나에게도  세월 가는 소리가 들린다. 기적소리를 내면서 멀어져 가는 기차처럼 설핏 잠든 밤에도 세월이 마구 흘러간다. 사람들이 청승맞게 꿇어앉아 기도하는 마음을 알겠다.

시, 글 2024.09.22

젊은 날 / 문정희

젊은 날 / 문정희 새벽별처럼 아름다웠던 젊은 날에도 내 어깨 위엔 언제나 조그만 황혼이 걸려 있었다 향기로운 독버섯 냄새를 풍기며 손으로 나를 흔드는 바람이 있었다. 머리칼 사이로  무수히 빠져 나가는 은비늘 같은 시간들 모든 이름이 덧없음을 그때 벌써 알고 있었다. 아 ! 젊음은 그 지느러미 속을 헤엄치는 짧은 감탄사였다 온 몸에 감탄사가 붙어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른 잎사귀였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는 광풍의 거리 꿈과 멸망이 함께 출렁이는 젊음은  한 장의 플래카드였다 그리하여 나는 어서 너와 함께  낡은 어둠이 되고 싶었다 촛불밖에 스러지는 햐얀 적막이 되고 싶었다.

시, 글 2024.08.22

그렇게 아름다운 날은 가고... / 정석원

그렇게 아름다운 날은 가고... / 정석원 바람에 흔들리는 육신 아름다운 색동옷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파랗게 물든 머리카락만 휘날린다 사랑하던 임들은 하나, 둘 흩어지고 홀로 멍하니 서서 어둠에 짙은 하늘만 멍하니 바라본다 무심한 시간은 보내는 아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 속을 스쳐 지나간다 수 없이 지나간 시간 아름다운 그 날 손가락이나 세어 보려나 다시 돌아오면 이제는 놓지 않으리다.

시, 글 2024.08.20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 김재진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 김재진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그때 그 용서할 수 없던 일들 용서 할 수 있으리. 자존심만 내세우다 돌아서고 말던 미숙한 첫사랑도 이해 할 수 있으리. 모란이 지고 나면 장미가 피듯,  삶에는 저마다 제 철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찬물처럼 들이키리.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나로 인해 상처받은 누군가를 향해 미안하단 말 한 마디 건넬 수 있으리. 기쁨 뒤엔 슬픔이 슬픔 뒤엔 또 기쁨이 기다리는 순환의 원리를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너에게 말해 주리.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쉬, 너를 보내지 않으리. 밤새 썼다 찢어버린 그 편지를 찢지 않고 우체통에 넣으리. 사랑이 가도 남은 마음의 흔적을 상처라 부르지 않으리. ..

시, 글 2024.05.18

황혼 들녘에 서서 / 김수환추기경

황혼 들녘에 서서 / 김수환추기경인생을 하루에 비하면난 지금 해거름에 와 있다.정상에서 내려와 황혼 들녘에 서 있는 기분이다.예나 지금이나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면마음이 편해진다.고향 풍경과 어머니 품이 느껴진다어릴 때 저녁이 가까워 오면 신작로에 서성거리며 행상 나간 어머니를 기다렸다.어머니는 산등성이로 기우는 석양을 등지고돌아 오실 때가 많았다.하느님 곁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하늘나라에 가면 보고 싶은 어머니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어 본다.

시, 글 2024.05.16

누구나 혼자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 김재진

누구나 혼자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닫힌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

시, 글 2024.05.12

새해에는 / 윤보영

새해에는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미소를 건내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꺠닫게 하고 그 행복을 나누는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위에서 기쁜 소식을 더 많이 듣고 그 소식에, 내 기쁨이 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미소 짓는 모습을 꺼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 하나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꽃이 주는 향기보다, 꽃이 가진 생각을 먼저 읽을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내 안에도, 내 밖에도 1년 내내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들게 내 삶에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시, 글 2023.01.05

송년의 시 / 윤보영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어야만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 속에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빛이 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 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 들이면서 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 여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시, 글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