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 황진수 친구가 없어 외롭다 비 내리는 오후 함께 차를 마실 이웃이 필요해.. 혼자 꽁꽁 숨어 살다보니 주변엔 사람이 없다, 이웃도 없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 흠뻑 젖은 나뭇잎 무겁게 떨어지는 기억의 편린 그립다 후포 앞바다 푸른 파도 추억처럼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너 시, 글 2022.03.13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김재진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다던 소식 오지 않고 고지서만 쌓이는 날 배고픈 우체통이 온종일 입 벌리고 빨갛게 서 있는 날 길에 나가 벌 받는 사람처럼 그대를 기다리네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 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시, 글 2022.03.09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 박라연 누군가의 따뜻함은 흘러가 꽃이 붉어지게 하고 상처는 흘러가 바다를 더 깊고 푸르게 할까 티끌, 이라는 이름부터 피라미 패랭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어디까지 나아갈까 태평양... 혹은 장미라는 이름으로 계급으로 붐비고 여물어가지만 제 이름의 화력만큼 이글거리는 애간장들에게 가만히 저를 열어 뿌려주는 엔도르핀을 만날 때 어떻게 인사하면 좋을까 사방이 그저 붉게 두근거리며 울어버릴 때 헤어진 이름이 깊고 푸른 바다로 걸어 들어가 버렸을까 내 떨림의 물결 한 가운데서 붉은 해가 떠올랐다 시, 글 2022.03.08
그를 보내며 / 한용운 그는 간다, 그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요,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간다. 그의 붉은 입술, 흰 이 , 가는 눈썹이 어여쁜 줄만 알았더니, 구름같은 뒷머리, 실버들 같은 허리, 구슬 같은 발꿈치가 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걸음이 걸음보다 멀어지더니 보이려다 말고, 말려다 보인다. 사람이 멀어질수록 마음은 가까와지고, 마음이 가까와질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보이는 듯한 것이 그의 흔드는 수건인가 하였더니, 갈매기보다도 적은 쪼각 구름이 난다 시, 글 2022.02.27
봄비 / 조병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온종일 책상에 앉아, 창 밖으로 멀리 비 내리는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노라면 문득, 거기 떠오르는 당신 생각 희미해져 가는 열굴 그래, 그 동안 안녕하셨나요 실로 먼 옛날 같기만 합니다. 전설의 시대같은 까마득한 먼 시간들 멀리 사라져 가기만 하는 시간들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 그 속에, 당신과 나, 두 점 날이 갈수록 작아져만 갑니다. 이런 아픔, 저런 아픔 아픔속에서도 거듭 아픔 만났다가 헤어진다는 거 이 세상에 왜, 왔는지? 큰 벌을 받고 있는 거지요 꿈이 있어도 꿈대로 살 수 없는 엇갈리는 이 이승 작은 행복이 있어도 오래 간직 할 수 없는 무상한 이 이승의 세계 둥우리를 틀 수 없는 자리 실로 어디로 가는건가 오늘따라 멍하니 창 밖으로 비 내리는 바다를 온종일 내.. 시, 글 2022.02.22
누가 묻거든 나 대답하리라 / 이해인 누가 날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거든 나, 그렇다고 말하리니... 그 누가 나더러 인생도 구름이냐고 묻거든 나, 또한 그렇노라고 답하리라. 왜냐고 묻거든 나, 또 말하리라. 청춘도 한번 왔다 가고 아니 오며 인생 또한 한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으니 이 어찌 바람이라, 구름이라 말하지 않으리오 오늘 내 몸에 안긴 겨울바람도 내일이면 또 다른 바람이 되어 오늘의 나를 외면하며 스쳐 가리니 지금 나의 머리 위에 무심히 떠가는 저 구름도 내일이면 또 다른 구름이 되어 무량 세상 두둥실 떠가는 것을... 잘난 청춘도 못난 청춘도 스쳐 가는 바람 앞에 머물지 못하며 못난 인생도 저 잘난 인생도 흘러가는 저 구름과 같을진대... 어느 날 세상 스쳐가다가 또 그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가는 생을 두고 무엇이 청춘이고 .. 시, 글 2022.02.19
어제를 돌아보다 / 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본 적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혼자 울어본 적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본 적 있는가 버림 받은 기분에 젖어본 적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얼굴을 묻어본 적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 인생은 추억을 통해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 있는가 시, 글 2022.02.12
너에게 부침 / 천양희 미안하다, 다시 할 말이 없어 오늘이 어제같아 변한 게 없다 날씨는 흐리고 안개 속이다 독감을 앓고나도 정신이 안 든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삶이 몸살 같아, 항상 내가 세상에게 앙탈을 해본다 병 주고 약 주고 하지 말라고 이제 좀 안녕해지자고 우린 서로 기를 쓰며 기막히게 살았다 벼랑 끝에 매달리기 하루 이틀 사흘 세상 헤엄치기 일년 이년 삼년 생각만으로도 점점 붉어지는 눈시울 저녁의 길은 제자리를 잃고 헤매네 무엇을 말이라 할 수 있으리 걸어가면 어디에 처음같은 우리가 있을까 돌아가면서 나 묻고 있네 꿈도 집도 내려놓고 하루는 텅텅 빈 채 일찍 저물어 상한 몸을 가두네 미안하다, 다시 할 말이 없어 오늘은 이 눈이 어두워졌다. 시, 글 2022.02.10
이별 노래 / 정호승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 뒷 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 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나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시, 글 2022.02.08
네가 눈 뜨는 새벽에 / 신달자 네가 눈 뜨는 새벽 숲은 밤새 품었던 새를 날려 내 이마에 빛을 물어다 놓는다 우리 꿈을 지키던 뜰에 나무들 바람과 속삭여 내 귀에 맑은 종소리 울리니 네가 눈 뜨는 시각을 내가 안다 그리고 나에게 아침이 오지 어디서 우리가 잠들더라도 너는 내 꿈의 중심에 거리도 없이 다가와서 눈 뜨는 새벽의 눈물겨움 다 어루만지니 모두 태양이 뜨기 전의 일이다 네가 잠들면 나의 천국은 꿈 꾸는 풀로 드러눕고 푸른 초원에 내리는 어둠의 고른 숨결로 먼데 짐승도 고요히 발걸음 죽이니 네가 잠드는 시각을 내가 안다 그리고 나에게 밤이 오지 어디서 우리가 잠들더라도 너는 내 하루의 끝에 와 심지를 내리고 내 꿈의 빗장을 먼저 열고 들어서니 나의 잠은 또 하나의 시작 모두 자정이 넘는 그 시각의 일이다 시, 글 202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