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설야 / 이외수

Daisyhg 2012. 2. 26. 23:11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詩를쓰면
눈이 내린다는 말 한마디

어디선가
나귀등에 몽상의 봇짐을 싣고
나그네 하나 떠나가는지
방울소리 들리는데

창을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함박눈만 쌓여라

숨 죽인 새벽 두시
생각 나느니 그리운 이여

나는 무슨 이유로
전생의 어느 호젓한 길섶에
그대를 두고 떠나 왔던가

오늘밤엔
기다리며 기다리며
간직해 둔 그대 말씀
자욱한 눈송이로 내리는데

이제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詩를 쓰면
울고 싶다는 말 한 마디

이미 세상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살아온 한 생애가 부질없구나

하지만 이 時間
누구든 홀로 깨어 있음으로

소중한 이여 보라
그대 외롭고 그립다던 나날 속에
저리도 자욱히 내리는 눈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길 하나
그대 전생까지 닿아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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