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푸른 밤 / 나희덕

Daisyhg 2022. 7. 27. 17:38

 

 

 

너에게도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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