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접어버리듯
잊기로 한다
밤새 내린 비가
마을의 모든 나무들을 깨우고 간 뒤
과수밭 찔레울 언덕을 넘어오는
우편배달부 자전거 바퀴에
부서져 내리던 햇살처럼
비로소 환하게 잊기로 한다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한 깊이만큼 사랑의 날들이
오래 머물러 주지는 않는 거다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
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
그러므로 이제
잊기로 한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일어서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먼 길을 바라보는
가을 새처럼
한꺼번에
한꺼번에 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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