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 이해인

Daisyhg 2021. 10. 13. 18:40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달려오는가

 

함께 있을 땐 잊고 있다가도

멀리 떠나고 나면

다시 그리워지는 바람

처음 듣는 황홀한 음악처럼

나뭇잎을 스쳐가다

내 작은방 유리창을 두드리는

서늘한 눈매의 바람

여름 내내 끊어오르던

내 마음을 식히며

 

이제 바람은

흰옷 입고 문을 여는 내게

박하 내음 가득한 언어를

풀어내려 하네

나의 약점까지도 이해하는

오래된 친구처럼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더 넓어지라고 하네

사소한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더 맑게, 더 크게

웃으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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