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더 깊은 눈물 속으로 / 이외수

Daisyhg 2021. 8. 17. 17:28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에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누워 있다
부끄럽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막다른 골목에서 쓰러져 울고 있었던가

그만 잊어야겠다


지나간 날들은 비록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거대한 바다에는 분명
내가 흘린 눈물도 몇방울
그때의 순순한 아픔 그대로 간직되어 있나니


이런 날은 견딜 수 없는 몸살로
출렁거리나니

그만 잊어야겠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우리들의 인연은 아직 다 하지 않았는데
죽은 시간이 해체되고 있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더 깊은 눈물 속으로


그대의 모습도 해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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