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어느 슬픈 날에 / 이용채

Daisyhg 2012. 2. 23. 17:00

 

 

1
누군가 내 마음을
두손을 잡고 흔들고 있다.
그러다가
낙엽지듯 힘없이 쓰러지고 나면
입 다문 어둠이 홀로 곁에 있다.
추억이 수줍게 채색된 그와의 시간
기억의 문을 꼭꼭 닫고 있을 누군가가 미워
차마 미움의 옷을 입히고, 나는
부지런히 아픔을 준비한다.
하루가 미워지는 노을의 우울
괴로워한 흔적이
꿈의 테잎에 새겨질 나의 고독이라면
잊혀지는 이의 몫까지
더욱 더 괴로워하자.

2
더 이상 허물어지는
슬픈 가슴이 아니기 위해
위로의 벽을 높이 쌓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슴으로 막다 보면
노을을 의지하는 눈물조차
가슴을 위로함이 힘에 겹다.

누군가의 전부를 원하는 것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없다.
어떤 모습으로든
작은 자신의 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우리들의 사랑.
모든 것을 갈구할 때
그는 달아나고 없는 것을
숨길 수 없어
흘려버리는 눈물로 배우기까지
우린 또 얼마나 서로의 가슴을
못으로 두드려야 하나?

3
내 얼굴에 씌어 있는
고독이란 표정에 대해
변명할 말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누구나가 가진 고민은
각자에게
그 누구의 것보다 더 큰
감당하기 힘든 어떤 얼굴.
변덕스런 나의 무거운 표정으로
멀어져 간 사람들이 아쉬워
애써 웃음짓는 얼굴이 두렵다.

4
슬플 때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가슴이 눈물을 펌프질할 때
아픔도 서운치 않을 눈물을
온몸으로 뒹굴며 흘려 주어야겠다.
아직은
세상을 조금은 사랑할 수 있기에
그 깊은 한숨으로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문고리를 꼭꼭 잠그고 어둠을 사랑하다 보면
어둠이 나를 감춰주고 잠시 초라함을 잊는다.
누구든 떠날 수 있고, 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의 마음
이제는 그에게 알려야만 한다.

5
둘러보면 모두가 슬픈 사람들
영화처럼 사랑을 꿈꾸며
그 사랑의 주인공이 되길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얼마나 애태웠는지 모른다.
꿈속에서만 본듯한 사랑이 가는 소리.
눈을 뜨면
언제나 곁에 없는 것을
눈물을 감추며
얼마나 숨겨야 했던 가슴인지 모른다.

6
잊을 사람은
어떻게든 잊어야 한다.
가슴에 큰 못질을 한 그이기에
하루는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표정으로
애써 살아가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웃음을 빌려서라도
표정 없는 얼굴에
작은 웃음 하나 가르치고 싶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또 한번의 아픔이다.
잊혀질 사람이라면
아픔으로만 남겨질 먼 시간 속의 사람이면
어떻게든 잊어야 한다.

7
아직은
보여줄 수 없는 마음이기에
이 초라한 모습을 안고 숨어 있다.
고독에도 무너지지 않을
사랑이라 여겼지만
어느새
초라함만이 나의 전부를 차지하고
가슴엔 벌써
눈물 냄새가 난다.

누군가를
나의 전부라 느끼는 것만큼
나 자신을 사랑할 때가 없다.
한번 사랑한 이는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비록 그 마음에 내가 없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