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216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리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침묵으로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시, 글 2021.09.10

가을 들녘에 부는 바람 / 정미숙

바람이 이는 가을 들녘에 서면 누군가 만날 것만 같아 가슴이 뛴다 갈대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시골 풍경은 홀로 걸어도 한 폭의 풍경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고운 빛으로 물들게 하지만 누군가 말벗이 되어 동행하는 이 있다면 더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줄 것 같다 가을이 주는, 가을만이 주는 멋 그 향기에 흠뻑 취하고 싶은 날 가을 들녘을 걸으면 값비싼 보석처럼 화려함이 묻어 있지 않아도 다정스런 연인들의 모습에서 보석보다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고운 배경 속 풍경이 되어 가을 속으로 물들어 가는 연인들 그들은 또 한 세기를 이끌어 갈 아름다운 젊은이들이기에 더 아름답다 이렇게 가슴 설레는 날은 옛 정취가 숨 쉬는 한적한 돌담 집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차 향기에 젖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가을 정취에..

시, 글 2021.09.09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워진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追憶)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시, 글 2021.09.08

널 만나기 위해 아파했던 / 이신옥

아직도 기다림을 머리에 이고 살아 널 만나기 위해 하루를 허비하면서 너의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 길을 가다가도 너의 모습이 그리워지고 낯선 바람을 만나도 너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아 조금씩 무디어져 가는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널 만나게 돼 기다림이 멈춰지는 날에는 널 만나기 위해 아파하지 않을 거야 너도 나처럼 기억을 지우며 살아 갈테니..

시, 글 2021.09.05

떠나렴 / 백창우

떠나렴 우울한 날엔 어디론가 떠나렴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렴 아무도 없다고, 이 놈의 세상 아무도 없다고 울컥, 쓴 생각 들 땐 쓸쓸한 가슴 그대로 떠나렴 맑은 바람이 부는 곳에서 푸른 하늘이 열리는 곳에서 돌아보렴,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 만났던 고운 사람을 누군가가 그대 곁에 있는 것보다 그대가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이 더 큰 기쁨이었던 것을, 다시 느끼렴 떠나렴 사는 게 자꾸 슬퍼지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땐 책이나 한 권 사 들고 아무 기차나 집어 타렴.

시, 글 2021.09.04

추억의 향기 / 박수진

강물이 쉬지 않고 흘러 흘러가듯이 구름이 어디론가 정처 없이 가듯이 모든 것은 지나가고 잊혀진다 하여도 우리 함께했던 날들 지워지지 않으리 우리는 언제까지나 소중한 사랑 후회 없이 사랑하고 사랑하다가 추억을 남기고 멀리 떠난 뒤에도 그 향기 오래 남아 별이 되어 빛나리 봄날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듯이 가을이 지나가면 겨울이 오듯이 모든 것은 떠나가고 잊혀진다 하여도 마주 보며 걸어온 길 지워지지 않으리 어디선가 다시 또 만날 우리의 사랑 미련 없이 사랑하고 사랑하다가 추억을 남기고 멀리 떠난 뒤에도 그 향기 오래 남아 별이 되어 빛나리 그 향기 오래 남아 별이 되어 빛나리

시, 글 2021.09.03

저녁별 하나 / 백창우

1. 누가 내 노래들을 기억해줄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이토록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외워 부를 이 있을까.. 해 지는 황혼녘에 홀로 서서 그 빛 다 가슴에 안아보면 너무도 초라한 내 모습에 한 없이 슬퍼지는데.. 아아, 이런 것이 인생이려니 우리 가난한 이름들의 삶이려니 힘 없이 돌아오는 길 위에 내 마음처럼 쓸쓸한 저녁별 하나.. 2. 누가 내 아픔들을 만져 줄까 모두 떠나간 어느 밤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어줄 이 있을까.. 어둠이 내린 도시의 불빛들은 슬픈 꿈으로 흔들리고 그리운 사람들의 그림자가 저만치 멀어지는데.. 아아, 이런 것이 인생이려니 우리 고단한 이름들의 삶이려니 힘 없이 바라본 하늘 한 켠에 내 마음처럼 쓸쓸한 저녁별 하나

시, 글 2021.09.02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 여림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는 점점 장대비로 변해가고 그 빗속을 뚫고 달리는 버스 차창에 앉아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을 너를 떠올리면서 조금씩 마음이 짓무르는 듯했다. 사람에게는, 때로 어떠한 말로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넋을 두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본다거나 졸린 듯 눈을 감고 누웠어도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의 어느 한 부분처럼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너를 보내는 길목마다.

시, 글 2021.09.01

흐린 날에는 편지를 / 김춘경

맑은 커피에 프림 한 스푼을 넣고 하늘이 흐려 우울한 날에는 물빛 편지를 쓴다 받아 줄 이 누구라도 좋다 짧은 안부에 그리움을 삭힐 수 있는 한 줄의 사연에 서로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라면 족하다 비록 내 사연이 짧다 해도 긴 여운으로 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펜 끝에 묻어 나는 온기를 느끼며 투명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행복하리라 내가 만난 삶, 사람, 그리고 사랑을 함께 느낀다는 것이 이처럼 홀가분한 일임을 편지지 여백의 한 귀퉁이 어디쯤에서 찾아 낸 기쁨이 온통 값진 것임을 알아내는 시간들이 소중할 것이다 오래된 팝송에서 묻어 나는 향수가 뿌연 하늘 끝 선 어디 쯤 닿을 때면 커피향에 눅눅해진 편지봉투는 그리움의 우표를 붙인 채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갈 테지만 오늘처럼 흐리고 아름다운 날..

시, 글 2021.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