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어쩌다 시인이 되어 / 이기철

Daisyhg 2021. 12. 9. 17:06

 

 

 

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

 

내 가진 것

시인이라는 이름밖엔 아무것도 없어도


내 하늘과 땅,

구름과 시내 가진 것만으로도

넉넉한 마음이 되어


혼자라도 여럿인 듯

부유한 마음으로
이 세상 길 걸어가네

 

어쩌다 떨어지는 나뭇잎

발길에라도 스치면
그것만으로도 기쁨이라 여기며


냇물이 전하는 마음

알아들을 수 있으면
더없는 은총이라 생각하며


잠시라도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에 가까이 가리라


나를 채찍질 하며

남들은 가위 들어

마음의 가지를 잘라낸다 하지만

나는 풀싹처럼

그것들을 보듬으며 가네


내 욕망의 강철이

부드러운 새움이 될 때까지
나는 내 체온으로

그것들을 다듬고 데우며 가네

 

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사람과 짐승, 나무와 풀들에 눈맞추며


맨발이라도 아프지 않게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