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
내 가진 것
시인이라는 이름밖엔 아무것도 없어도
내 하늘과 땅,
구름과 시내 가진 것만으로도
넉넉한 마음이 되어
혼자라도 여럿인 듯
부유한 마음으로
이 세상 길 걸어가네
어쩌다 떨어지는 나뭇잎
발길에라도 스치면
그것만으로도 기쁨이라 여기며
냇물이 전하는 마음
알아들을 수 있으면
더없는 은총이라 생각하며
잠시라도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에 가까이 가리라
나를 채찍질 하며
남들은 가위 들어
마음의 가지를 잘라낸다 하지만
나는 풀싹처럼
그것들을 보듬으며 가네
내 욕망의 강철이
부드러운 새움이 될 때까지
나는 내 체온으로
그것들을 다듬고 데우며 가네
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사람과 짐승, 나무와 풀들에 눈맞추며
맨발이라도 아프지 않게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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