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리던 날
팔공산 한티재 가는 길 절집에
대웅전처럼 커다란 찻집이 있다
청사초롱 불 밝힌
커다란 팔각 완자 문을 빼꼼히 열어젖히면
삐걱거리는 소리에 진한 촛농 내음이 반긴다
하얀 김 피어오르는 백 년 차 한 잔에
창밖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젊은 날의 추억을 마신다
사각의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팽팽히 밀고 당기며 넘나들던 시선
둘만이 아는 그 길을
겨울날 펄럭이는 머플러처럼
타박타박 걸어갔었다
촛농을 굴리던 대화는 불타듯 흩어지고
녹아내리는 촛농은 식어버린 육신처럼
심지만 홀로 태운다
촛농으로 뭉쳐진 덩어리는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슬픔을 노래한다
날아오르는 새 떼들처럼 연인들은 날아들고
나는 목마른 영혼으로 살아있는
겨울 그 찻집 한 바퀴 돌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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